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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 자 호 휘 차이, 세종 고종 묘호 시호 뜻 존호 능호

by 낯선공간2019 2021. 6. 9.

목차

    ✈ 자(字) 휘(諱) 호(號) 시호(諡號) 존호(尊號) 묘호(廟號) 능호(陵號)의 정의와 차이

    아시아권에서는 예부터 누군가를 직접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꺼리는 관습이 있었다.

    개인정보 보호법이 있던 것도 아닌데... 아니 그보다 이름은 부르려고 만든 것 아니던가? 名은 이름 명이잖은가? 무언가를 이르는 명칭으로써 '이름'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그걸 지어 놓고 부르기를 꺼리다니...

    대신 최강창민, 유노윤호...처럼 이름 대신 부를 호를 만들어 불렀다.

    부자지간이나 사제지간이 아니면 이름을 부르지 않았고, 친구사이에는 특히나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았다.

    이 문장 오해 없기 바란다.

    부자지간이나 사제지간에서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손위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이름을 불렀다는 것이지, 서양 것들처럼 아들이 아버지 이름을 함부로 불렀다는 것이 아니다.

    막역해야 할 친구 간에도 조심해서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았다니... 대단하다.

    물론 어릴 때 아명으로 서로 친구 간에 부르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아명일 뿐이다.

    아명은 이름과는 또 다르다.

    이희 고종의 휘는 재황(載晃), 형(㷩), 희(熙). 였지만 왕이 되기 전 이름은 '이명복'이었다.

    심지어 아이일 때는 그냥 '개똥'이었다.

    명복의 친구들은 고종을 '개똥'이라고 불렀다.

    조선 후기 왕들은 천 것과 같은 삶을 살다가 인생역전으로 왕이 되었으니, 왕자나 태자 시절 없이 무지렁이의 이름을 누리다가 왕을 준비할 때 임시번호판처럼 재황이라는 초휘를 이용하다가 파휘해야하므로 신중히 이름을 골라서 개명했다.

    고종의 이름이 이희로 알려진 것은 다분히 오해 소지는 있지만 유명하니 그냥 "고종 이희"라고 칭하자.

    이름 대신에 별명을 부르다니... 막말로 학생주임 선생님을 "학주"라 부르고, 윤리 선생을 "공작(콩테-> 꼰대)"라고 별명으로 부르는 것과 다름없는 게 과거에는 예의였다니...

    오늘은 자 호 휘 차이와 능호 묘호 시호 차이에 대해 알아본다.

    한반도에서는 남자 나이가 20살이 되면, 상투를 틀어 올리고, 여자는 15세가 되면 비녀를 올리는 계례라는 성인식을 치렀다.

    남자들은 이때 자(字)를 받는다. 여자? 조선시대에는 성인지 감수성이 고려시대보다도 후퇴했던 시대다. 그딴 것을 줄 리가... 심지어 자(字)는 오롯이 아들(子)이 갓을 쓰고 있는 모양새니 얼마나 다분히 남성적인 글자겠는가?

    요즘 시대 같으면 페*떼들의 주된 공격 대상이었으리라..

    아무튼 이 자라는 것은 이름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이름과 관련이 있는 글자로 짓는 게 관례였다.

    제갈량(諸葛亮)의 양(亮)은 본디의 이름이고 자를 공명(孔明)으로 받았다.

    제갈량의 양(亮)도 밝다는 뜻이고 공명의 명(明)도 밝다는 뜻으로 서로 뜻이 상호 통한다. 

    꼭 동의어일 필요는 없다.

    꿈보다 해몽으로 멋지게 해석될 수만 있으면 됐다.

    아무튼 자와 이름의 관계는 이처럼 이름에서 비롯된 한자를 이용해서 자를 지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자는 마치 이름의 아바타랄까?

    한반도의 남자들은 삼국시대부터 자를 지어 사용했다. 

    설총(薛聰)의 자는 총지(聰智)였다.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자는 여해(汝諧)다.

    참고로 이순신 장군의 자는 이순신 장군의 어머니가 지어주었다.

    순임금이 신하들 중 우임금을 지적하여 "오직 너(汝) 라야 세상이 화평케(諧)되리라"라고 한 말에서 여해(汝諧)를 가져와지었다고 전해진다.

    자는 일반 양인들의 겉멋 그득한 이름이라면 휘(諱)는 임금의 본명을 일컫는 말이다.

    왕의 아들이 오직 한 명일 뿐이라면야 태어나자마자 왕이 될 운명이니 이름과 휘가 같을 수 있겠지만, 조선시대 왕 중에서 처음부터 오롯이 왕이 되리라 기대됐던 왕자가 태자를 거쳐서 왕이 된 경우는 오히려 소수에 불과하다.

    태조는 처음부터 왕이 아니었으며, 태조의 아들들도 태조와 함께 창업에 힘썼던 인물들인 데다 이방원과 같이 왕자의 난을 통해 왕이 된 경우도 있으니, 유년기에 휘를 받은 적이 없는 왕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세종대왕 이도 역시 본인이 왕이 될 거라고 생각도 못했던 인물이잖은가?

    수양대군은 오죽하며... 영조 대왕도 자기 형이 그렇게 일찍 죽으리라 알았을 턱이 없었고, 철종, 고종은 말해 뭣하리..

    아무튼 이런 관계로 왕의 휘는 대체로 왕이 된 후 개명을 통해 휘를 정한 경우도 많았다.

    물론 이도는 원래 이도였지만...

    요즘으로 치자면 별명 격인 호(號)는 자보다 자유롭게 작명했다.

    호는 별명답게, 성격이나 특징, 좋아하는 것, 거주지, 관직 등과 관련해서 친구나 스승이 지어주었던 진짜 별명인 셈이다.

    자기 별명을 자기가 지으면 자호(自號)라 불렀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호(號)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이순신 장군의 호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다.

    이쯤 되면 당연히 눈치챘겠지만 충무공은 호가 아니다.

    김성한의 소설 임진왜란에서는 이순신 장군의 호가 덕곡(德谷)이라 했고, 보통은 일반적으로 이순신 장군의 호는 덕곡으로 알려져 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가문에 전해 내려오는 이순신 세가에서는 이순신 장군의 호가 어린 시절 서울에 살 때는 기계(器溪)였고, 아산으로 이사한 뒤에는 백암(白巖)으로 불렸다고 전하고 있다.

    백암은 이순신 장군의 옛집의 부지가 있던 마을의 이름이어서 신빙성이 있는 편이다.

    http://jmagazine.joins.com/monthly/view/278800?aid=278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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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magazine.joins.com

    존호는 임금이 죽은 뒤에 추증되는 이름을 통칭한다.

    시호(諡號)는 제왕이나 재상, 유현들처럼 나름 셀레브리티 한 사람들이 죽은 뒤에 그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붙이는 이름이다.

    대체로 정 2품 이상인 셀레브리티들에게 추증되었지만, 후대에는 개나 소나 다 가졌다고도 한다.

    시호가 다 좋은 뜻만 가진 것도 아니었다.

    후대에 밉보이면 재수 없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적당히 업적을 세운 셀럽이라면 일정한 법칙애 따라 시호를 추증했다.

    충무라는 시호를 예로 들자면 아래의 충에 해당하는 업적이 있으면 시호에 "충(忠)"을 추증한다.

    이순신 장군이나 진주성의 김시민 장군처럼 난을 평정하는 공이 더해지면 무(武)"가 추증된다.

    따라서 이 2개의 타이틀을 획득했을 경우 "충무(忠武)"라는 시호가 주어진다.

    충무공(忠武公) 혹은 충무 후(忠武侯)가 된다.

    제갈량의 시호는 충무 후였다.

    묘호(廟號)는 왕이 죽은 뒤에 종묘에 신위를 모실 때 추증되는 이름이다.

    흔히 시호와 묘호를 혼동하는데, 엄연히 다르다.

    세종대왕을 예로 들면, 세종은 묘호이고, 시호는 장헌영 문예 무인 성명 효대 왕(莊憲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이다.

    업적만큼 시호가 길어진다.

    이순신 장군의 앞에 흔히 붙이는 호인 충무공은 바로 시호이다. 

    우리나라에 충무 시호를 받은 분은 12분이나 계신다.

    시호건 묘호건 살아생전 그 이름을 들은 사람은 없다.

    대역 소설처럼 혹여 과거로 회귀해서 이순신 장군 살아계신 시대로 가서 이순신 장군을 만나서 반가운 마음에 "충무공 각하" 이따위로 부르면 충무둥절~ 해진다.

    임금의 존호는 좀 복잡한데, 우리나라가 중국을 사대하면서 사실 시호가 많아진 경향이 있다.

    시호 자체만 놓고 보면 조정의 신하들이 추증하는 존호와 중국에서 내려주는 시호 두 가지가 있다.

    순조를 예로 들자.

    인릉, '순종, 연덕, 현도 경인 순희 문안, 무 정헌 경성 효대 왕'이 순조의 풀네임 능호와 시호인데.

    저 각각을 존호라 통칭하고, 인릉은 능호, 그 뒤는 시호이다.

    순종은 앞서 설명한 묘호이다.

    연덕은 청나라에서 내려준 시호.

    현도 경인 순희 문안은 왕의 공덕을 찬양하는 존호.

    '무 정헌 경성 효대 왕'은 신하들이 추증해준 시호이다.

    이외에 전호라는 것도 있었는데, 잘 사용되진 않았다.

    왕의 장례 후 3년 동안 신주를 모시는 전각을 혼전이라 하고 이 혼전을 칭하는 호칭이 전호였다.

    휘호(徽號)는 왕비가 죽은 뒤에 시호와 함께 추증한 존호를 이르는 말이다.

    참고 URL :

    묘호를 추증하는 법칙 : http://blog.naver.com/begagi/50150006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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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11&dirId=111001&docId=60002893&qb=7Jes7ZW0IOydtOyInOyLoA==&enc=utf8§ion=kin&rank=4&search_sort=0&spq=0&sp=1&pid=Suna5U5Y7vsssZc04Gosssssst4-453900&sid=VCPE3wpyVpIAAAVmF%408

     

    이순신의호 여해의 뜻을 알고싶어요

    이순신의호 여해의 뜻과 의미좀 가르쳐주세요

    kin.naver.com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11&dirId=111001&docId=109093420&qb=7J207Iic7IugIO2YuA==&enc=utf8§ion=kin&rank=2&search_sort=0&spq=1&pid=SunZJlpySDGssvCynnhssssssuC-404674&sid=VCPE3wpyVpIAAAVmF@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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